설교 묵상 · 마태복음 11:25-30마태복음 11장 묵상마태복음 11장 강해마태복음 11장 설교

마태복음 11장 묵상,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5-30절 묵상.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아버지, 아들이 보여 주시는 아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청을 묵상 질문 3가지, 기도문과 함께 담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28-29)

본문 속으로

마태복음 11장에서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다(2-3절). 예수님은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셨다(4-5절).

이어서 예수님은 이 세대를 장터에 앉아 동무를 부르는 아이들에 비유하신다(16절). 요한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자 사람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했고, 예수님이 먹고 마시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다(18-19절). 20절부터 예수님은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자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책망하신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로 시작한다(25절). 사람들이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던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기도(25-26절)를 마치신 예수님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밝히시고(27절), 지친 사람들을 부르신다(28-30절).

갈릴리 호숫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펴고 기도하시는 수채화 일러스트

숨기시고 나타내시는 아버지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다(25절).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던 이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로 옮긴 네피오스는 본래 젖먹이나 어린아이를 가리키고, 배움이 짧은 사람을 두고도 쓰는 말이다. 여기서는 내세울 것 없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같은 이들을 가리킨다. 마태는 이 말을 21장에서 다시 쓴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치시자 어린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소리 질렀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를 보고 노했다. 예수님은 시편 8편을 인용해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답하셨다(21:14-16). 여기서 '어린 아기'가 네피오스다. 그때도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찬미는 어린 아이들의 입에서 나왔다.

26절에서 예수님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하신다. '뜻'으로 옮긴 유도키아는 '기뻐하심'이라는 말로, 에베소서 1장 9절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에도 나온다.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을 나타내셨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익숙한 본문 앞에서 이미 아는 이야기라고 여기기 쉽다.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다음 구절을 먼저 떠올리고, 내 생각과 맞는 대목만 골라 듣는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도 말씀 앞에서는 받는 사람이다. 오늘 읽는 말씀을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는 은혜로 받고 있는지 돌아보자.

올리브나무 아래 앉으신 예수님이 그물을 곁에 둔 어부 제자들과 아이를 안은 어머니, 어린아이에게 이야기하시는 수채화 일러스트

아들이 보여 주시는 아버지

2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5절의 '나타내심'과 27절의 '계시를 받는'에는 같은 동사 아포칼륍토가 쓰였다. 25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타내시고, 27절에서는 아들이 원하시는 자에게 아버지를 계시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온전히 아시고, 사람은 아들이 보여 주실 때 아버지를 안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믿음을 전하려 할 때, 우리는 말을 잘하거나 흠 없이 살아야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처럼 애쓴다. 말과 삶을 돌아보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아버지를 보여 주시는 분은 아들이시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하는 일에 힘쓰자.

내게 와서 배우라

28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부르심 앞에 있다. 먼저 자격을 갖추고 오라는 말은 없다.

'무거운 짐 진'으로 옮긴 포르티조와 30절 '내 짐'의 포르티온은 뿌리가 같은 말이다. 23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책망하셨다(23:4). 11장에서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신다.

멍에는 소의 목에 얹어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는 나무 틀이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께 배운다. 그 부르심에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을 덧붙이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온유'로 옮긴 프라위스는 21장 5절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왕을 두고 개역개정이 "그는 겸손하여"로 옮긴 말이기도 하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왕이시면서도 나귀를 타실 만큼 온유하시다. 그 왕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신다(30절).

흙길을 따라 무거운 자루를 진 일꾼과 잠든 아이를 안은 어머니,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올라오고, 길 위에서 예수님이 두 팔을 벌려 맞으시는 수채화 일러스트

29절 끝의 약속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는 예레미야 6장 16절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옛적 길 곧 선한 길로 가라고 하시며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개역개정이 '평강'으로 옮긴 히브리어 마르고아는 '쉼'이라는 뜻이다. 그때 백성은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고 대답했다. 갈릴리 고을들도 회개하지 않았다. 그런 때에 예수님은 지친 사람들을 다시 부르신다.

이번 주에도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을 수 있다. 돌봐야 할 가족이 있고, 맡은 일의 책임이 있고, 마음에 남은 상처도 있다.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사람은 마음의 쉼을 얻는다. 오늘 마음을 누르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나씩 주님께 아뢰고, 그분의 말씀에서 배우는 시간을 가져 보자.

마음에 새기는 질문

  1. 익숙한 본문을 읽거나 들을 때, 이미 안다고 여겨 넘기게 되는 대목은 어디인가?

  2. 믿음을 전하고 싶은 가족이나 이웃이 있다면, 그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부터 전하고 싶은가?

  3. 지금 내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그 짐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오늘의 기도

주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말씀을 다 안다고 여기며 마음을 닫았던 때를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주신 말씀을 은혜로 받게 하소서.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하셨으니, 제 곁의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하게 하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나아갑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마음의 쉼을 얻게 하소서.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같은 마태복음의 다른 본문 묵상은 마태복음 6장 묵상,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의 진짜 무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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