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 묵상,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시편 100편 1-5절 묵상.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는 부름,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목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는 예배를 살피고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00:4)
본문 속으로
시편 100편의 표제는 "감사의 시"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표제에 '감사'가 붙은 시는 이 한 편뿐입니다. '감사'로 옮긴 히브리어 '토다'는 레위기 7장 12절에서 감사제물을 가리킬 때도 쓰는 말이어서, 이 시를 감사제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는 예배자의 노래로 읽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세면 다섯 절 안에 명령이 일곱 번 나옵니다. 부를지어다, 섬기며, 나아갈지어다(1-2절), 알지어다(3절), 들어가며(들어가서), 감사하며, 송축할지어다(4절). 3절과 5절은 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을 밝힙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지으셨으며,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0편 바로 앞에는 여호와를 왕으로 노래하는 시들이 모여 있습니다. 96편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96:1), 98편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98:4)라고 부릅니다. 100편도 "온 땅이여"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성전 예배에서 부른 노래이지만, 부르는 대상은 온 땅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1-2절). 2절의 '섬기며'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 아바드는 종이 주인을 위해 일하는 데에도 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에도 씁니다.
출애굽기에서 이 동사는 두 주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3)고 하셨습니다. 홍해 앞에서 두려워한 백성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2)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어 자기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에게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는 말씀은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람을 부르시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오래 교회를 섬긴 성도일수록 이 구절 앞에서 마음이 걸립니다. 해마다 맡아 온 봉사, 가족을 돌보는 일, 자녀를 위한 기도가 어느새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본문은 섬김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고, 누구를 섬기는지 다시 보게 합니다. 그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그리스도로 건지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때, 같은 일을 기쁨으로 다시 섬길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3절). 1-2절에서 기뻐하고 섬기라고 부른 시인은 3절에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말합니다. 기쁨으로 섬기라는 명령은 여호와가 누구신지 아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시인은 세 가지를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의 것이며,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양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 적힌 글자대로 읽으면 '우리가 아니요'가 되어 '우리가 우리를 지은 것이 아니요'로 옮긴 번역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고백은 같습니다.

바로 앞 95편도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95:6)고 부르며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95:7)이라고 노래합니다. 양은 스스로 풀밭을 찾아가지 못하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00편이 노래한 기르시는 목자를 우리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납니다.
자녀를 키우고 일터에서 성과를 내고 노후를 준비하다 보면, 내 삶은 내가 꾸려 간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3절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는 그의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나를 지으신 분이 나를 기르시니, 내일 일을 혼자 다 지고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4절은 다시 명령으로 돌아갑니다. 성전 문으로 들어가고, 그 안의 뜰로 들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송축하라고 합니다. 예배자는 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감사를 품고 갑니다.

무엇을 근거로 감사합니까.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5절). '인자하심'으로 옮긴 헤세드는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백성에게 끝까지 베푸시는 사랑을 말하고, '성실하심'은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감사의 근거가 하나님의 성품에 있으니, 형편이 어려운 한 주를 보낸 사람도 감사하며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대에'라는 말처럼 이 감사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를 붙드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 자녀 세대도 붙드십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인자하심을 함께 예배하는 이들과 하나씩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해야 하니까 하고 있는 섬김이 있다면 그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누구신지 다시 떠올려 볼 때 무엇이 달라집니까?
- "우리는 그의 것"이라는 고백 앞에서 내가 혼자 지고 있던 염려는 무엇입니까?
- 올해 하나님이 베푸신 인자하심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이며, 그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저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목자가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해야 하니까 하던 섬김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저를 죄의 종살이에서 건지시고 주님을 섬기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내 삶을 내가 꾸려 간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을 따르게 하옵소서. 형편이 어려운 날에도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믿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문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를 노래한 다윗의 시편은 시편 23편 묵상,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