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묵상,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15-19절 묵상. 숯불 앞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와, 이어 주신 '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를 묵상하고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5)
본문 속으로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이 디베랴 호수에서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 갈 무렵 바닷가에 서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자,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걸립니다. 육지에 오르니 숯불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떡도 있습니다(21:9). 예수님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 떡과 생선을 손수 나눠 주셨습니다.
이 아침의 숯불은 다른 밤의 불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었고,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었습니다(18:18). 개역개정은 그 불을 '불'로 옮겼지만, 헬라어로는 21장 9절의 '숯불'과 같은 낱말입니다. 이 낱말은 신약에서 이 두 곳에만 나옵니다. 베드로는 그 불 곁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곧 닭이 울었습니다(18:25-27).

요한의 아들 시몬아
조반을 다 먹은 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처음 만나신 날에도 예수님은 그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하시며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셨습니다(1:42). 주님은 그 첫 만남의 이름으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십니다.
이어지는 물음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입니다.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장담했고(13:37), 마태복음에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는 말도 남아 있습니다(마태복음 26:33). 다른 제자들보다 자기 사랑이 크다고 여겼던 그 사람에게 주님이 이 물음을 던지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에는 비교하는 말이 없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물음이 세 번째로 이어지자 베드로는 근심하며 대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21:17). 주님은 베드로가 부인한 밤도 아시고, 지금 그가 드리는 고백도 아십니다. 베드로는 자기 장담을 내려놓고 주님이 아신다는 사실에 기대어 대답합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을 저버렸던 기억, 장담했다가 무너진 기억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일을 다 아시는 채로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사랑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지금 우리 마음을 아뢸 수 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대답할 때마다 주님은 일을 맡기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이 세 번 물음을 받고 세 번 양을 맡았습니다.
세 번 모두 주님은 양 앞에 '내'라는 말을 붙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10:11).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목자가 그 양을 베드로에게 맡기십니다. 양은 맡겨진 뒤에도 여전히 주님의 양입니다.
16절의 '치라'로 옮긴 헬라어 동사는 베드로가 훗날 쓴 편지에도 나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함께 장로 된 자'라고 소개하며(베드로전서 5:1) 장로들에게 권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5:2). 이 편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부릅니다(5:4). 호숫가에서 양을 맡은 베드로는 훗날 그 양 무리를 '하나님의 양 무리'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이 일을 맡은 것은 실패를 만회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찾아와 물으셨고, 베드로는 고백했을 뿐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오늘 먼저 양 무리를 맡은 목회자에게 닿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고 돌보는 자리를 맡은 성도도 같은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맡은 지체는 내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니, 내 뜻대로 끌고 가지 않고 주님 앞에서 그 사람을 돌봅니다.
나를 따르라
이어서 주님은 베드로의 앞날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요한은 이 말씀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라고 풀어 줍니다(21:19).
'어떠한 죽음으로'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앞서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고 말씀하신 뒤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라고 적었고(12:32-33), 18장 32절에도 같은 말이 있습니다. 헬라어로도 같은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설명하던 말로 요한은 베드로의 죽음을 설명합니다.

이 말씀 끝에 주님은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잡히시기 전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셨습니다(13:36). 그때 베드로는 자기 각오로 따라가겠다고 했고, 그 각오는 숯불 곁에서 끝내 무너졌습니다. 이제 주님은 무너졌던 베드로를 다시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21:20-22)에서 베드로는 따라오는 다른 제자를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짧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21:22). 우리도 다른 사람이 받은 길과 우리 길을 견주며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주님은 다른 사람의 길을 설명하시기보다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베드로는 숯불 곁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밤을 기억하는 채로 주님의 물음 앞에 섰습니다. 주님을 저버렸거나 장담했다가 무너진 내 기억은 무엇이고,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 주님은 '내 양'이라고 하시며 양을 맡기셨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거나 돌보는 지체 가운데, 주님의 양이라는 사실을 잊고 내 뜻대로 대하던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 베드로는 다른 제자의 길을 물었다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즘 나는 누구의 형편과 내 형편을 견주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오늘 주님을 따르는 한 걸음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숯불 앞으로 다시 부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장담이 무너졌던 기억까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제 사랑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제 마음을 아뢰게 하옵소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신 주님, 제게 맡기신 지체들이 주님의 양임을 잊지 않고 기꺼이 섬기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길과 제 길을 견주며 흔들릴 때에도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제게 주신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묵상,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