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묵상,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누가복음 2장 8-14절 묵상.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진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구유에 누인 아기라는 표적,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의 뜻을 살피고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
누가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일을 짧게 적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고,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2:7)는 한 줄이 그때의 형편을 알려 줍니다.
이야기는 곧바로 들판으로 옮겨 갑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2:8). 누가는 목자들을 그날 밤에도 양 떼 곁을 지키던 사람들로만 소개합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이 자란 동네입니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와서 이새의 아들들을 불렀을 때 다윗은 "양을 지키"던 막내였고(삼상 16:11), 그날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씨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2-13). 그 약속대로 다윗의 동네에 나신 구주의 소식을 하나님은 밤 들판의 목자들에게 알리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2:9). 천사는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바로 그 이유를 전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
10절의 '전하노라'는 헬라어로 '좋은 소식을 전하다'라는 한 낱말입니다. 신약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쓰는 동사입니다. 천사는 이 소식을 이유로 들어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입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11절은 그 소식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에서 '오늘'은 여러 번 중요한 자리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 하셨고, 삭개오의 집에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19:9) 하셨으며,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하셨습니다. 목자들이 들은 '오늘'은 그 첫 번째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구주가 그날 다윗의 동네에 나셨습니다.
'구주'로 옮긴 헬라어 낱말은 사복음서에 세 번 나옵니다. 요한복음 4장 42절 말고는 모두 누가복음 1-2장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1:47) 하고 찬양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드린 '구주'라는 호칭을 천사는 구유의 아기에게 씁니다. 그 아기는 그리스도이시고 주이십니다. 천사는 그 구주가 "너희를 위하여" 나셨다고 전했습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천사는 목자들에게 표적을 하나 줍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2:12). 구유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입니다. 누가는 2장에서 구유를 세 번(7·12·16절) 적습니다. 그리스도이시고 주이신 분을 알아볼 표적으로 하나님은 구유에 누인 아기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고백합니다(빌 2:6-8).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그분의 낮아지심은 십자가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사의 말에 이어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2:13).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기뻐하신'으로 옮긴 명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리킵니다. 같은 뿌리의 동사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에, 그리고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32)에 쓰였습니다. 평화를 받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은혜를 베푸신 사람들이 이 평화를 받습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에서 '화평'도 같은 헬라어 낱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화평을 누립니다.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롬 5:10). 구유에 누우신 아기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수였던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2:16) 찾았고, 천사가 이 아기에 대하여 한 말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2:17).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2:20). 목자들은 듣고 본 모든 것이 천사가 말한 대로였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대림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옵니다. 목자들처럼 밤에도 맡은 자리를 지키는 분들에게도 천사가 전한 소식은 같습니다.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습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천사는 크게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즘 나를 두렵게 하는 일 앞에서 10-11절의 소식을 어떻게 다시 붙들겠습니까?
- 구주가 "너희를 위하여" 나셨다는 말씀을 나를 향한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마다 듣는 성탄 이야기로 듣고 있습니까?
- 목자들은 듣고 본 것 때문에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번 주 내가 듣고 본 은혜 가운데 무엇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려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약속하신 구주를 구유에 누인 아기로 보내 주시고, 주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원수였던 저를 주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하신 말씀을 다시 듣게 하옵소서. 주께서 은혜로 주신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목자들처럼 제가 돌아가는 일터와 가정에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이 아기의 탄생을 천사가 마리아에게 먼저 알린 장면은 누가복음 1장 묵상,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