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묵상 · 시편 139:1-12시편 139편 묵상시편 139편 강해시편 139편 설교

시편 139편 묵상,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편 139편 1-12절 묵상. 나를 살펴 다 아시고, 어디로 가든 거기 계셔서 인도하고 붙드시며, 어둠 속의 나도 낮처럼 보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묵상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함께 담았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편 139:1-2)

본문 속으로

시편 139편의 표제에는 '다윗의 시'라고 적혀 있다. 시인은 1-6절에서 자기를 다 아시는 하나님을, 7-12절에서 어디로 가든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13-18절에서는 모태에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19-22절에서 악인들을 두고 호소한 뒤, 23-24절의 기도로 시를 맺는다. 이 묵상에서 함께 읽을 본문은 1-12절이고, 끝에서 23-24절의 기도를 함께 본다.

누군가 나를 속속들이 안다는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산 가족도 내 속을 다 알지는 못한다. 시편 139편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고 고백한다.

올리브나무가 선 돌담 안뜰의 돌의자에 수금을 든 다윗이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수채화 일러스트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1절의 '살펴 보셨으므로'는 히브리어 하카르를 옮긴 말이다. 사사기 18장 2절에서 단 자손이 다섯 사람을 보내 땅을 살피게 할 때도 이 동사가 쓰였다. 하나님은 땅을 샅샅이 살피듯 시인을 깊이 아신다.

그 앎은 어디까지 미칠까. 앉고 일어서는 일, 멀리서도 밝히 아시는 생각, 걷는 길과 눕는 것이 차례로 나오고, 4절은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는 고백에 이른다. 말이 되기 전의 생각부터 입 밖에 나온 말까지 하나님은 다 아신다.

6절에서 시인은 이 지식이 너무 기이하고 높아서 자기가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아시는 일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놀랄 뿐이다.

사람 앞에서 우리는 보여 줄 모습을 고른다. 예배당에서 보이는 얼굴과 집에서 보이는 얼굴이 다르고, 남이 알면 곤란한 생각은 감춘다. 하나님 앞에서는 고를 모습이 없다. 이 말씀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5절을 함께 읽어야 한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5절). '둘러싸시고'로 옮긴 동사는 군대가 성읍을 에워쌀 때도 쓰인다(신 20:12).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시인은 곧바로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손을 얹으셨다고 잇는다. '안수하셨나이다'로 옮긴 히브리어는 레위기에서 제물 머리에 손을 얹을 때 쓴 말과 다르고, 손바닥을 시인 위에 두셨다는 뜻이다. 나를 에워싸신 그 손이 내 위에 얹혀 있다. 하나님의 손은 10절에서 다시 나온다.

7절에서 시인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묻는다. 주를 피해 숨으려 해도 갈 곳이 없다. 하늘에 올라가도, 죽은 자들이 내려가는 스올에 자리를 펴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10)

이른 새벽 바닷가 바위 위에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등을 보이고 서서 먼 바다 끝을 바라보는 수채화 일러스트

우리에게도 감추고 싶은 잘못 때문에 하나님 앞을 피하고 싶은 날이 있다. 시인은 스스로 피해 갈 곳을 꼽았지만, 우리에게는 원하지 않았는데 놓이게 된 곳도 있다. 수술을 기다리는 병실이나 자녀가 집을 떠난 뒤 비어 있는 방이 그렇다. 어디에 있든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붙드신다.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어둠이 나를 덮으면 하나님 눈에도 내가 보이지 않을까. 시인도 그런 순간을 떠올린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11절).

12절은 그 생각에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라고 답한다. '숨기지 못하며'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어둡게 하다'라는 뜻이다. 내게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밤도 하나님께는 어둡지 않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돌로 쌓은 양 우리 곁 모닥불 앞에 앉은 어린 목동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채화 일러스트

이 말씀은 어둠이 곧 걷힌다고 약속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둠 속에 있는 나를 하나님이 낮처럼 보고 계신다고 말한다. 오래 이어지는 슬픔이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부끄러움 속에 있으면 혼자라고 느끼기 쉽다. 그 밤에도 하나님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혼자 견디기 어려운 어둠이 길어진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도 미루지 말자.

이 시는 23-24절의 기도로 맺는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23절). 1절의 '살피다'와 '알다'가 이 기도에 다시 나온다. 시인은 자기를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 다시 살펴 달라고 구하고, 24절에서는 자기 안에 악한 행위가 있는지 보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다.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숨기던 것을 내어놓고 그분의 인도를 구할 수 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고,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7, 9).

마음에 새기는 질문

  1. 하나님이 나를 다 아신다는 말씀이 지금 내게 위로로 다가오는가, 부담으로 다가오는가.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2. 내가 숨고 싶은 곳이나 원하지 않았는데 머물게 된 곳은 어디인가. 그 자리에서 10절을 읽으면 무엇이 달리 보이는가.

  3. 23절처럼 "나를 살피사"라고 기도한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은 무엇인가.

오늘의 기도

주님, 저를 살펴 보셨으므로 저를 아십니다. 제가 앉고 일어서는 것과 아직 말하지 못한 생각까지 아시는 주님 앞에 숨기던 것을 내어놓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도 계시고 오른손으로 저를 붙드심을 믿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주께는 흑암과 빛이 같음을 기억합니다. 숨길 수 없는 저를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 주시는 은혜를 의지합니다. 저를 살피시고, 제 안에 악한 행위가 있는지 보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어두운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시편은 시편 23편 묵상,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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