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묵상,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시편 90편 1-12절 묵상.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신 하나님, 아침에 돋았다 저녁에 마르는 풀 같은 인생,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는 모세의 기도를 살피고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본문 속으로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모세의 이름이 붙은 시편은 이 한 편뿐이고, 시편 넷째 권이 이 기도로 시작됩니다. 언제 드린 기도인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모세는 원망하던 한 세대가 광야에서 죽어 갈 것이라는 말씀(민 14:29)을 듣고, 그 세월을 백성과 함께 걸은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는 세 걸음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하나님이 영원하시다고 고백하고(1-2절), 그 앞에서 사람의 날이 얼마나 짧은지 바라봅니다(3-6절). 그다음 그 짧음 뒤에 있는 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고, 날을 세는 지혜를 구합니다(7-12절). 기도 안에 "우리"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모세 한 사람의 고백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신 하나님
모세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절).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는 머물 집이 없었습니다. 장막을 걷고 다시 치는 날이 이어졌고, 어제 머문 자리는 오늘 머물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거처'로 옮긴 히브리어 '마온'은 사람이 사는 처소를 뜻하고, 들짐승이 깃드는 굴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돌아가 몸을 누일 곳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 말을 땅이나 성이 아닌 하나님께 붙였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가 지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보기에 가장 오래 버티는 것이 산인데, 하나님은 그 산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우리도 평생 거처를 찾으며 삽니다. 집을 마련하고, 일터에서 자리를 지키고, 노후를 준비하고,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수고가 잘못은 아니지만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돌아가 쉴 곳은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마르는 풀
3절에서 모세의 눈은 사람에게로 옮겨 갑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9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지은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모세는 사람이 죽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로 봅니다.
4절에서 6절까지 그림이 이어집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홍수처럼 쓸어 가시고, 사람은 잠깐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는 풀 같습니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6절).

부모님을 떠나보낸 분, 친구의 부고를 받은 분, 품에 있던 자녀를 떠나보낸 분은 이 풀의 그림을 설명 없이도 압니다. 모세가 짧은 인생을 이렇게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1절에서 이미 하나님을 거처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기 날이 짧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습니다.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7절부터 기도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모세는 인생이 짧은 까닭을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찾습니다. 8절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감추어 둔 죄까지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고, 9절의 말처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10절에서 모세는 사람의 연수를 칠십,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신속히 지나간다고 덧붙입니다. 가장 좋은 날이라 여긴 세월에도 수고와 슬픔이 배어 있고, 그 세월마저 빨리 지나갑니다.
그 고백 끝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날을 센다는 말은 남은 날수를 계산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내 날이 짧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사는 일입니다. 모세는 그 지혜를 스스로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고 "가르치사"라고 구합니다. 나이가 든다고 날을 세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기도는 13절로 이어집니다. 모세는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고, 14절에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라고 구합니다. 진노 앞에서 죄를 인정한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붙듭니다. 신약은 그 긍휼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풀처럼 마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은 날을 두려움으로만 세지 않고, 그 은혜를 의지하며 셉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나는 지금 무엇을 내 거처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집, 일, 건강, 자녀 가운데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마르는 풀처럼, 영원할 줄 알았는데 지나가 버린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어떻게 돌아보게 했습니까?
-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라고 기도한다면, 이번 주에 내 시간을 쓰는 방식에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신 주님,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어 주신 은혜를 고백합니다. 제가 쌓아 온 것에 기대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제 날이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마르는 풀 같음을 알게 하옵소서. 감추어 둔 죄까지 주님 앞에 드러나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의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영생의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제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셔서 남은 날을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시편은 시편 46편 묵상,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