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묵상,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장 1-14절 성탄 묵상. 태초에 계신 말씀, 어둠에 비치는 빛,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말씀을 살피고 묵상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본문 속으로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로 시작하고, 누가복음은 서문 뒤에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이야기부터 들려줍니다. 요한복음에는 족보도 탄생 이야기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오신 일을 "태초에"에서부터 이야기합니다.
"태초에"는 성경 첫 구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의 첫마디와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셔서 빛을 지으셨고(3절), 요한복음 1장도 말씀과 생명과 빛을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은 20장 31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힙니다. 1장 1-14절은 첫머리에서 그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1절은 말씀을 두고 세 가지를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2절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다시 말하면서 말씀을 '그'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이 누구신지는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드러납니다.
3절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발 딛고 선 땅, 우리 몸까지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
성탄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누가복음이 전하는 구유의 아기를 떠올립니다(눅 2:7). 요한복음은 그 아기가 어떤 분이신지 먼저 알려 줍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만물을 지으신 말씀이셨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4절). 이어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합니다(5절). '깨닫지 못하더라'로 옮긴 헬라어 동사 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를 개역개정은 요한복음 12장 35절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에서 '붙잡히다'로 옮겼습니다. 이 동사에는 '깨닫다'와 '붙잡다(덮쳐 사로잡다)'라는 뜻이 함께 있어서 영어 성경도 KJV는 '깨닫지 못했다'(comprehended it not)로, ESV는 '이기지 못했다'(has not overcome it)로 옮깁니다. 어둠은 빛을 알아보지 못했고, 빛을 붙잡아 끄지도 못했습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비칩니다.
6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세례 요한이 나옵니다. 그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했습니다(7절). 8절은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선을 긋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빛이신 분을 증언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 일정이 많아집니다. 행사와 장식이 늘수록 정작 오신 분은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이분이 빛이십니다' 하고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참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췄습니다(9절).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10절). 3장 19절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지으신 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11절).
우리 안에도 빛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빛이 우리의 행위를 드러낼 때 우리는 얼굴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빛은 찾아왔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절). 요한복음은 영접하는 것을 '그 이름을 믿는 것'으로 풀어 줍니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13절).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3:3)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믿음 생활을 오래 할수록 우리는 믿은 햇수나 집안의 내력, 그동안 쌓은 열심에 기대기 쉽습니다. 자녀 됨은 그런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는 그리스도께서 주셨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4절에서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지 않으시고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히 4:15).
'거하시매'로 옮긴 헬라어 동사 스케노오(σκηνόω)는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이 동사는 신약에 다섯 번 나오는데, 이 구절 말고는 모두 요한계시록에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요한계시록 7장 15절에서 이 동사를 "장막을 치시리니"로 옮겼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성막을 세웠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출 40:34). 14절은 장막을 치신 말씀 바로 뒤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라고 씁니다. 성막에 머물던 하나님의 영광을 이제 사람들이 육신이 되신 말씀 안에서 보았습니다.

모세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고 구했고(출 33:18), 하나님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하셨습니다(33:20).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아들 안에서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은 마지막 날을 두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라고 말합니다. 여기 '함께 계시리니'도 같은 동사입니다. 성탄에 오신 말씀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고,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을 바라보며 삽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성탄의 소식은,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지금 내 자리에서 어떤 위로가 됩니까?
- 빛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드러낼 때 나는 피하고 싶어집니까? 그 부분을 주님 앞에 어떻게 내어놓겠습니까?
-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씀 앞에서, 내가 그동안 기대 온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태초부터 주님과 함께 계시며 만물을 지으신 말씀, 곧 주님의 아들을 육신으로 보내 우리 가운데 거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제 마음을 비출 때 피하지 않게 하시고, 드러난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게 하옵소서. 제가 믿은 햇수나 열심을 내세우지 않고, 그 이름을 믿는 자를 주님께로부터 나게 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다가오는 성탄을 기다리며 저도 세례 요한처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들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날마다 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누가복음이 전하는 성탄 밤 목자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2장 묵상,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에서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