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1-11 묵상,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
빌립보서 3장 1-11절 묵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권면,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긴 바울의 고백,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부활에 이르려는 소망을 묵상 질문 3가지, 기도문과 함께 담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 3:8-9)
본문 속으로
빌립보서 3장은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로 시작한다. '끝으로'라고 옮긴 헬라어 로이폰은 편지를 맺을 때도 쓰지만, '이제' 정도의 뜻으로 화제를 넘길 때도 쓴다. 바울은 앞에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야기를 마치고 여기서 새 주제로 넘어간다.
2절부터는 날카로운 경고가 이어진다. 대상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이들이 자랑하는 할례를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빌립보 성도들은 이미 믿음으로 복음을 받았는데, 이들은 거기에 무언가를 더해야 구원이 온전해진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경고한다.

경고와 함께 바울은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4절부터 11절까지 그 고백이 이어진다.
기쁨을 먼저 말하는 이유
율법을 더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은 겉으로 엄격하고 경건해 보였을 테니, 빌립보 성도들도 흔들릴 수 있었다. 바울은 그 가르침을 경고하기 전에 먼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쓴다. 그리고 같은 말을 거듭 쓰는 것이 자신에게는 수고롭지 않고 성도들에게는 "안전하니라"고 덧붙인다. 기쁨의 근거가 주님께 있는 사람은 그런 가르침에 쉽게 끌려가지 않는다.
3절은 참된 할례파가 누구인지 보여 준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봉사할 힘은 성령께서 주시고, 자랑할 이름은 그리스도뿐이며, 자기 조건과 자격에는 기대지 않는다.
우리의 기쁨은 자주 다른 데서 온다. 봉사가 잘 풀리고 사람들이 알아줄 때는 기쁘다가, 애쓴 일이 드러나지 않거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기쁨도 금세 식는다. 그런 기쁨은 내가 해낸 일에 매여 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와 상관없이,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긴 사람
4절에서 바울은 뜻밖의 말을 한다. 자기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누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율법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조건을 자신도 다 갖추었다고 먼저 밝혀 두고, 그 조건들이 구원 앞에서 아무 힘이 없음을 보여 주려 한다.
바울의 이력에는 빈틈이 없다. 그는 유대인 가정에서 난 지 팔일 만에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다. 이스라엘 족속이고,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을 낸 베냐민 지파였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지만(행 22:3)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소개한다. 히브리 말과 조상의 풍습을 지키는 집안에서 자랐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고, 열심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할 정도였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7절에서 바울은 돌아선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유익'과 '해'로 옮긴 원어는 이익과 손해를 셈할 때 쓰던 말이어서, 바울은 방금 늘어놓은 목록을 이익 칸에서 손해 칸으로 옮겨 적은 셈이다. 그가 할례나 혈통을 악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조건들을 구원의 근거로 삼으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목록이 생긴다. 목록 자체는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새로 온 성도의 서툰 기도를 들으며 속으로 내 신앙 연수와 견주고 있다면, 우리도 육체를 신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라며
8-9절에서 바울은 손해의 목록을 모든 것으로 넓힌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쓰레기나 오물을 가리키는 거친 단어를 골랐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9절은 바울이 어떤 의를 붙드는지 밝힌다. 그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던 바울이 그 의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받아 하나님 앞에 섰다.
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한다고 말한다. 부활의 권능과 고난을 한 문장에 묶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매인 몸으로 썼다(빌 1:13). 매여 지내는 날에도 그는 부활의 권능을 알아 갔고, 11절에서는 마지막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한다.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에 바울은 지금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길로 받아들였다. 11절 앞머리의 "어떻게 해서든지"를 부활을 의심하는 말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소망의 근거는 9절에서 말한 믿음으로 받은 의에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다 보면 손해를 보거나 오해를 받는 때가 있다. 믿음 때문에 거절한 일이 불이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옳다고 믿은 선택을 가까운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때에도 그리스도를 알아 갈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아는 기쁨이 크면, 그분을 위해 내려놓는 일도 잃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울은 갇힌 중에도 이 기쁨을 알았기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썼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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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내세우며 안심하고 있는가. 그것이 나의 기쁨과 다른 성도를 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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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는 바울의 고백은, 오늘 내 삶에서 어떤 선택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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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따르느라 감수하는 손해나 어려움 앞에서,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내게 어떤 위로가 되는가.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오랫동안 제 손으로 쌓아 온 것들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 자랑이 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재는 잣대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쌓은 의로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붙들게 하소서. 유익하던 것을 내려놓을 때에도 그리스도를 얻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느라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부활의 권능으로 붙드시는 주님을 알아 가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이 시리즈의 앞 묵상은 빌립보서 2장 12-18 묵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