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 묵상,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장 11-19절 묵상. 멀리 서서 부르짖은 나병환자 열 명, 가다가 받은 깨끗함,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린 사마리아 사람을 살피고 질문 3가지와 기도문을 담았습니다.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누가복음 17:16)
본문 속으로
누가는 9장 51절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 길 초입에서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9:52-53). 요한복음은 두 민족의 사이를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라고 설명합니다. 17장 11절에서 예수님은 그 길을 가시며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실 때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 선 채 예수님을 맞았습니다(12절). 레위기는 나병 환자에게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 13:46)라고 명합니다. 그들은 가까이 갈 수 없어 선 자리에서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16절 끝에 가서야 나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열 사람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습니다(13절). '선생님'으로 옮긴 헬라어 에피스타테스는 신약에서 누가복음에만 일곱 번 나옵니다. 나머지 여섯 번은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썼습니다. 개역개정은 그 여섯 번 가운데 5장 5절만 '선생님'으로, 8장 24절과 9장 49절 등은 '주여'로 옮겼습니다. 제자가 아닌 사람이 이 호칭으로 예수님을 부른 곳은 이 구절뿐입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불쌍히 여겨 달라는 한 가지였습니다. 자기 사정을 길게 늘어놓지도, 고쳐 주시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고쳐 주실 분을 향해 낼 목소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밤이나 가족이 수술실에 들어간 새벽에, 기도할 말을 고르지 못한 채 "주님,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만 부르짖습니다. 14절은 "보시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멀리 서서 부르짖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은 손을 대지도 않으셨고, 나았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고만 하셨습니다. 레위기 14장은 나병에서 나은 사람을 제사장에게 데려가 진찰을 받게 합니다(레 14:2-3). 몸에 아직 아무 변화가 없는 열 사람에게 이 말씀은 이미 나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가는 길에 열 사람 모두 깨끗해졌습니다. 고치신 분은 예수님이고, 열 사람은 그 말씀대로 길을 나섰을 뿐입니다. 누가는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적지 않습니다. 열 사람 모두 같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열 사람은 한길을 걸었고, 15절부터 한 사람이 발길을 돌립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5-16절). 13절에서 소리를 높여 불쌍히 여겨 달라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하나님을 높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18절)라고 하십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예수님의 발 앞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절). 18절에서 '이방인'으로 옮긴 헬라어 알로게네스는 신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오는 말로, 다른 족속에서 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아홉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돌아온 사람은 유대 사람들이 상종하지 않던 그 사마리아 사람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죄 사함을 받은 여자(7:50), 혈루증을 앓던 여자(8:48), 여리고의 맹인(18:42)도 들었습니다. 깨끗함은 열 사람이 다 받았지만,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돌아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고치신 분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께 돌아왔고,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를 살린 믿음까지 포함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그가 드린 감사는 먼저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한 해를 돌아보면, 기도로 구해서 받았는데 감사는 하지 못하고 지나간 일이 있습니다. 걱정하던 일이 풀리면 우리는 곧 다음 일로 넘어가고, 받은 일만 기억한 채 주신 분을 잊습니다. 본문은 받은 은혜를 들고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돌아가라고 부릅니다. 올해 받은 은혜 하나를 적어 두었다가 이번 주 예배 자리에서 그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 기도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만 부르짖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 올해 기도로 구해서 받았는데 감사하지 못하고 지나간 일은 무엇입니까?
- 받은 은혜를 들고 예수님께 돌아가는 일을 이번 주 어디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멀리 서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던 저를 보시고 들어 주셨습니다. 고쳐 주시고 건져 주신 은혜를 받고도 다음 일로 바빠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처럼 받은 은혜를 알아보고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게 하옵소서. 저를 구원하신 분이 주님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게 하시고,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를 함께 예배하는 이들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시편 100편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고 부릅니다. 시편 100편 묵상,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