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17-21 묵상, 하늘에 시민권을 둔 사람
빌립보서 3장 17-21절 묵상. 함께 나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권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이들을 두고 흘린 눈물, 하늘에 있는 시민권과 낮은 몸을 변하게 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을 묵상 질문 3가지, 기도문과 함께 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본문 속으로
바울은 바로 앞에서 자신은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했다(3:12-14). 17절에서는 그렇게 달려가는 자신을 함께 본받으라고 권한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였다(행 16:12).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였지만, 그곳 사람들은 로마에 속한 도시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던 듯하다. 바울과 실라가 처음 빌립보에 복음을 전했을 때, 두 사람을 관리들에게 끌고 간 사람들도 "로마 사람인 우리"를 앞세워 고발했다(행 16:21).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그런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았다.

본문은 두 부류의 사람을 나란히 보여 준다. 17절의 "행하는 자들"과 18절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는 원문에서 '걷다'라는 뜻의 같은 동사를 쓴다. 바울은 이 한 동사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과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사람들을 함께 그린다.
함께 나를 본받으라
'함께 본받는 자'라는 뜻의 쉼미메테스는 신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오는 말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함께 자기를 본받기를 바란다. 이어서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덧붙이며, 그렇게 사는 성도들에게로 눈을 넓혀 준다.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바울은 바로 앞 12절에서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한 사람이다. 그가 성도들에게 보여 준 모습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3:7-8), 그리스도께 잡힌 사람으로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었다. 고린도 교회에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썼다. 바울을 본받는 사람은 결국 바울이 따라간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된다.
어느 교회에나 그렇게 사는 성도가 있다. 오랫동안 새벽 기도 자리를 지켜 온 권사님,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하게 장사해 온 집사님 같은 분들이다. 그분들도 허물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분들이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지 눈여겨보면 배우게 된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누군가 지켜본다. 자녀가 보고,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도 본다. 아직 다 이루지 못했어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갈 길을 보여 준다.
눈물로 하는 경고
18절에서 바울의 말투가 달라진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바울은 이 사람들 이야기를 여러 번 했고, 이번에는 울면서 말한다.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부른다.

19절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적는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들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섬기며 사는지는 분명하다.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영광으로 여긴다.
'생각하는'으로 옮긴 프로네오는 빌립보서에 여러 번 나오는 동사다. 2장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에서 '품으라'가 이 동사이고, 4장 2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할 때도 같은 동사를 쓴다. 성도는 땅의 일 대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도록 부름받았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야기 앞에서 먼저 돌아볼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도 마음이 땅의 일에 붙들릴 때가 있다. 남과 비교하며 더 가지려는 마음이나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이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자주 기준이 되고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주님 앞에서 돌아보자. 바울은 그 길의 마지막이 멸망이라고 울며 경고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의다. 그 마음을 주님께 고백하고 돌이켜,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나도 같은 마음에 끌릴 수 있는 사람이다. 주님을 떠나 사는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하지 말고, 그를 위해 울며 기도하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20절 원문은 '우리의'라는 말을 문장 맨 앞에 두어,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성도들을 맞세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시민권'으로 옮긴 폴리튜마는 1장 27절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에서 '생활하라'로 옮긴 동사 폴리튜오마이와 뿌리가 같다. 로마의 식민지에 사는 빌립보 성도들은 이 말을 들으며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다시 떠올렸으리라.
바울은 3장 9절에서 자신이 가진 의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고백했다. 하늘의 시민권도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받는다. 우리가 애써서 따내는 자격이 아니다. 20절의 '있다'도 원문에서 현재형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지금 이미 그 나라에 속해 있다.
하늘에 시민권을 둔 사람은 주님을 기다린다. 바울은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하고, 21절에서 주님이 오셔서 하실 일을 밝힌다. 주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낮은 몸'에서 '낮은'으로 옮긴 타페이노시스는 2장 8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라고 할 때의 동사 타페이노오와 뿌리가 같다. 자기를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이, 우리의 낮은 몸을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다. 병으로 몸이 약해지고 기운이 예전 같지 않을 때도 이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몸을 바꾸실 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주님께 있다.
4장 1절에서 바울은 이 단락을 맺으며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한다. 낮은 몸으로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이 몸을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하게 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주 안에 굳게 서자.
마음에 새기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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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눈여겨보며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사는 모습은 곁에 있는 가족과 처음 교회에 온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을 보여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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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채우는 걱정이나 바람은 무엇인가.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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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는 말씀을 믿는다면, 이번 주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말을 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오늘의 기도
주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저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그들과 함께 주님을 따라가게 하소서. 땅의 일에 붙들린 제 마음을 고백하오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주님을 떠나 사는 사람을 볼 때 손가락질하지 않고, 눈물로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약하고 낮은 이 몸을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하게 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 맡겨 주신 자리에서 주 안에 굳게 서게 하소서.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이 시리즈의 바로 앞 묵상은 빌립보서 3장 12-16 묵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