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묵상 · 예레미야 29:10-14예레미야 29장 묵상예레미야 29장 강해예레미야 29장 설교

예레미야 29장 묵상,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예레미야 29장 10-14절 묵상. 바벨론 포로에게 보낸 편지 속 칠십 년의 약속,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생각, 온 마음으로 구하면 만나리라는 말씀을 묵상 질문 3가지, 기도문과 함께 담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본문 속으로

예레미야 29장은 편지로 시작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이 편지를 써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보냈다. 기원전 597년에 여고니야 왕과 고관들, 기능공들이 끌려간 뒤였고(2절), 예루살렘에서는 시드기야가 다스리고 있었다(3절). 성전도 아직 예루살렘에 서 있던 때다.

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 하나냐가 하나님이 "이 년 안에" 성전 기구를 되돌려 오시고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외쳤다(28:3-4).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다. 바벨론의 포로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8-9절). 그런데 예레미야의 편지는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고 자녀를 낳으라고, 끌려가 사는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5-7절). 하나님은 포로들에게 바벨론에서 오래 살아갈 길을 일러 주시고, 돌아갈 날도 약속하셨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포로로 끌려온 유다 가족이 흙벽돌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수채화 일러스트

칠십 년이 차면

10절은 기한부터 말한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신다. 편지를 받은 어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는 날을 보지 못할 터였다. 6절이 아들과 딸이 혼인해 자녀를 낳는 데까지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포로 공동체 전체와 그 자손에게 주셨다.

'차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 말레는 '가득하다, 채우다'라는 뜻이다. 성경은 정해진 기한이 다 되었다고 말할 때도 이 동사를 쓴다. 예레미야는 25장에서도 칠십 년이 끝나면 하나님이 바벨론 왕과 그 나라를 벌하신다고 전했다(25:12). 백성에게는 버려진 세월처럼 느껴졌을 칠십 년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있다. 몇 년째 교회를 떠나 있는 자녀를 기다리고, 더디게 낫는 몸을 견디고, 풀리지 않는 관계를 안고 산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싶다. 10절의 칠십 년은 포로 공동체에게 주신 기한이라, 내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말씀은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 준다.

해 질 무렵 바벨론의 흙벽돌 집 문 앞에서 노인이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노을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수채화 일러스트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11절은 이 편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하셨다. 포로 생활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받은 심판이었다(25:8-11). 여고니야 왕은 끌려와 있었고, 편지가 말한 칠십 년은 포로들에게 까마득한 세월이었다. 눈앞의 형편은 재앙처럼 보였다.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라고 말씀하신다.

'생각'으로 옮긴 히브리어 마하샤바는 마음에 품은 계획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평안'은 안녕과 온전함을 두루 가리키는 샬롬이고, 7절의 '평안'도 같은 말이다. '미래'로 옮긴 아하리트는 '나중, 뒷날'을 뜻한다. 하나님은 포로 생활로 끝나지 않는 앞날과 희망을 약속하셨다.

이 말씀을 내 일이 곧 잘 풀린다는 약속으로 읽으면 본문과 어긋난다. 11절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칠십 년이 찰 때까지 바벨론에서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은 고난이 이어지는 그 세월 동안에도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에스라서는 바사 왕 고레스가 포로들을 돌려보낸 일을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신 일로 기록한다(에스라 1:1).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말한다(고린도후서 1:20). 로마서 5장 1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을 말한다. 신약이 '화평'으로 쓴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을 옮길 때 쓰던 말이다.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백성에게 주신 평안의 약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에서 가장 깊이 이루어졌다.

형편이 무너진 날에 아프지 않은 척할 필요는 없다. 이 약속은 '너희', 곧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이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면 믿음의 식구들에게 형편을 나누고,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을 함께 붙들자.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12절은 "내게 와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하고, 13절은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한다. 12절 앞부분은 히브리어로 '너희가 나를 부르고 와서 기도할 것이요'처럼 10절과 11절의 약속에 이어지는 말이다. 하나님은 백성이 다시 기도하게 될 그날도 약속에 넣으셨다. 훗날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예레미야가 전한 칠십 년을 깨닫고 금식하며 기도했다(다니엘 9:2-3).

13절은 모세가 신명기에서 한 말과 닮았다. 모세는 백성이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질 날을 내다보며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명기 4:29)고 말했다. 여기서 '거기'는 흩어져 간 이방 땅이다. 하나님은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서도 온 마음으로 구하는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고 하셨다.

같은 포로들을 두고 하나님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예레미야 24:7)라고 말씀하셨다. 온 마음으로 돌아올 그 마음까지 하나님이 주신다.

바벨론의 강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유다 포로 가족이 무릎 꿇고 두 손을 들어 기도하는 수채화 일러스트

14절에서 개역개정이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로 옮긴 히브리어는 '내가 너희에게 찾아지겠다'에 가까운 말이다. 하나님은 백성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하시고, 쫓아 보내셨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그들을 모아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고레스 때 포로들이 돌아오면서 이 약속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새기는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더디게 느껴지는 기다림은 무엇인가. 그 시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으면 기다림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2. 예레미야 29장 11절을 나 한 사람의 형편이 곧 좋아진다는 약속으로 읽어 온 적은 없는가. 칠십 년이 차기를 바벨론에서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어떤 위로였을까.

  3. 형편이 나아지면 하겠다고 미뤄 둔 기도가 있는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아뢰고 싶은가.

오늘의 기도

주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앞에서 조급해지는 마음을 고백합니다. 오래 기다리는 이 시간도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게 하소서. 눈앞의 형편이 재앙처럼 보이는 날에도 평안을 주시려는 주님의 생각을 신뢰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약속을 붙들게 하소서. 형편이 나아지면 하겠다고 미뤄 두었던 기도를 오늘 이 자리에서 드립니다. 온 마음으로 구하는 자를 만나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이 하루를 살게 하소서.


이 묵상은 설교AI가 본문 배경과 원어 자료로 만든 설교 개요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모르신다고 탄식하던 백성에게 주신 위로는 이사야 40장 묵상, 새 힘을 얻는 자리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설교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설교AI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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